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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둥이가 뱃속에서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35주도 되지 않았는데 텃밭 다녀오는 길에 진통이 시작되었다. 벌써 나오면 안 되는데 생각했지만 배는 주기적으로 통증이 시작되었다. 조산이라니...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셋째 탄생이야기
아이는 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에 유난히 셋째맘들이 있었고, 특히 아이를 좋아하던 나는 셋째가 갖고 싶었다. 신랑도 동의를 한 터라 둘째 돌쯤부터 셋째를 바랐지만 쉽지 않았다. 아이 둘을 제왕절개를 하면서 자궁에 유착이 심하게 생겼다고 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네 산부인과를 찾았고, 그 산부인과 의사는 나에게 이미 둘이 있으니 잘 키우라고 했다. 내 자궁은 유착이 문제가 아니라 (유착이 있으면 임신은 어려우나 안 되는 건 아니라고 했다) 두 번의 제왕절개로 인해 자궁내막이 너무 얇아졌다는 거다. 평상시에 이렇게 얇은데 추후에 임신을 하게 되더라도 중 후기에 아기가 크면 자궁이 늘어나면서 혹여라도 자궁이 찢어질 수가 있고 그렇게 되면 아기는 물론 엄마까지도 심각한 상황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이제 셋째는 안녕이구나라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며 병원을 나섰다. 혹시나 싶어 다른 병원에도 가려고 했지만 어차피 같은 의견이겠거니 싶어서 포기를 했었다. 그 후 이사를 하게 되었고, 아파트 커뮤니티가 운영이 돼서 살이나 빼자라는 마음으로 1개월 정도 러닝머신에서 걷기 운동을 했다. 그러다가 생리를 하게 됐는데 애매하게 3일 정도 약간만 나오더니 끝났다. 혹시나 싶어 임신테스트기를 했는데 두줄!!! 급히 남편에게 연락했는데, 우리는 기쁨과 함께 걱정이 앞섰다. 아기와 산모 둘 다 위험할 수 있다고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1시간 후, 바로 생리혈이 쏟아져 나왔다. 아.. 역시 자궁유착이 심해서 착상이 잘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남편과 그래 그렇구나 하고 지나쳤다. 하지만 며칠 후 또 약간의 혈이 나왔고 몸이 안 좋은 것 같다는 생각에 분당차 여성병원을 찾았고, 거기서는 일단 임신테스트기 두 줄이 나왔으니 산모등록을 하고 검사를 하자고 한다. 등록을 하고 대기실에 앉아있는데 다른 산모들의 태아 심박소리가 밖으로 들려오는데 내심 부러움이 생겼다. 곧 내 차례가 왔고, 배에 젤을 바르고 기계를 댄 순간! 헉... 콩알만 한 태아의 심장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혈이 나왔고 이미 내 몸밖으로 흘러나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심장이 잘 뛰고 있다니! 그리고 다행히 교수님의 말씀은 아기들은 정말 강하기 때문에 그 근육이 약하면 다른 근육으로 키워서 잘 자랄 수 있다고, 그리고 내막이 얇은 부분은 만삭 때도 그렇게 늘어나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걱정 말고 태교를 하라고 하셨다. 그 후로도 별 이벤트는 없었지만 내심 불안한 마음에 무조건 2주에 한 번씩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나이가 한국나이로 44살이라(생일이 12월이라 만으로 하면 42이다) 어쨌든 노산이기에 불안해서 양수검사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담당교수님이 양수검사는 18주가 넘어야 할 수 있지만 융모막검사는 양수검사처럼 99프로 이상 확정으로 결과가 나오고 11주 이상만 되면 할 수 있으니 융모막검사를 하라고 추천해 주셨다. 이왕이면 빨리 아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융모막 검사를 예약하고 얼마 뒤 검사를 위해서 남편과 함께 병원을 방문했다. 그리고는 교수님이 직접 초음파를 보고 어떻게 할 것인지 보시는데 초음파를 보시며 하시는 말씀이 보통은 태반이 위에 있고 아기가 아래에 있어서 배를 찔러서 바로 융모막을 채취할 수 있는데 우리 막둥이는 아가가 위쪽이고 태반이 밑에 있어서 시술이 좀 어려울 것 같단다. 그래도 못하는 건 아니니 비스듬히 해서 체취를 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고, 혹여라도 체취양이 부족해서 결과가 안 나오면 양수검사 또 하면 되니까 걱정 말고 오늘 시술하자고 하신다. 어렵긴 하지만 일단은 자신감 있어 보이는 교수님의 말씀에 오케이 하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전에도 나는 또 얼마나 많은 검색을 했던가... 융모막 검사에 대해 이것저것 많이 검색을 해봤다. 양수검사보다 부작용이 생길 확률이 더 많았다. 어떠한 검사든 인위적으로 아기가 있는 공간을 파고들어 체취를 하는 것이니 마냥 좋을 수는 없지 않은가. 시술은 그렇게 아프지 않았고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하지만 일주일 후 들려온 얘기에 나는 너무 힘이 빠졌다. 그렇지 않아도 시술 후에 스트레스로 악몽을 꾸고 너무 힘들었는데, 체취량이 많지 않아 결과가 안 나왔으니 추후에 양수검사를 하자고 하신다. 교수님께 검사가 중요한 게 아닌 것 같다, 시술 후 나의 스트레스가 아기에게 더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으니 그냥 니프티검사(채혈검사, 확진검사가 아니라 확률검사로 신뢰도가 양수검사에 비해서 낮다)로 대체하자고 하였다. 그렇게 열심히 병원을 오가며 11월 중순부터는 담당교수님과 수술 일정을 잡고 있었다. 그러다가...
진통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거의 매주 양평에 있는 텃밭에 간다. 신랑이 식물 좋아하는건 알았지만 농사까지 이렇게 잘할 줄은 몰랐는데 덕분에 밭을 사고 작년 한 해는 야채 걱정 없이 풍족하게 먹을 수 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텃밭에 다녀오던 토요일 저녁이었다. 그날따라 신랑이 운전을 험하게 한다고 생각해서 좀 천천히 하라고 몇 번을 얘기했는지 모르겠다. 심하진 않지만 배가 자꾸 당겨서 인상이 구겨졌다. 집에 도착해서 갓 따온 야채들과 삼겹살 파티를 했다. 이상하게도 고기 먹을 땐 안 아팠던 거 같은데 아니면 아팠지만 고기 먹느라 인식을 못했나 싶다. 밥을 다 먹고 힘들어서 누웠는데 배가 또 당겨왔다. 오늘 너무 피곤했나 싶어서 침대로 가서 누웠는데도 배가 자꾸 당겼다가 안 당겼다가 한다. 한 30분이 지났는데도 계속 주기적으로 통증이 있어서 혹시나 싶어 진통어플을 깔아서 체크를 했다. 10분 간격으로 진통이 있었다. 이러다 없어지겠지 하며 그냥 있었는데 없어지기는커녕 간격이 5분으로 줄었다. 출산을 하던 안 하던 일단 병원을 가야겠다 싶어 아이들과 다 함께 차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가는 도중 남편이 혹시라도 지금 낳아야 한다고 하면 어떡하겠냐고 묻는데, 싫었다. 아직 한 달이나 넘게 남았는데 벌써 출산이라니, 자궁수축억제제라는 것도 있고 하니(그동안 또 난 얼마나 많은 검색을 했던가) 난 하루라도 더 품겠다고 대답했다. 사실 이 시기에 태동도 너무 기분이 좋았어서 다시는 없을 이 느낌을 좀 더 오래 갖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도착한 응급실, 태동검사 소변검사 갖가지 검사를 다 하더니 입원하자고 한다. 태동이 지속적으로 감지되어서 35주면(자정이 지나서 35주 0일이었다) 출생 후에도 인큐 안갈 수 있고 충분히 살 수 있으니 걱정 말고 수술을 하잔다. 다행히 담당교수님도 일찍 와서 수술을 직접 해준다고 했다.
드디어 세상 빛을 본 우리 막둥이
입원 준비를 하고 혼자 입원을 했다. 입원 수속을 하고 입원실로 옮겨지는 동안 나는 혼자였다. 코로나 때문에 신랑이 동행 하지 못했고 나머지 아이 둘도 봐야 했기에 응급실부터 입원실까지 난 계속 누워만 있었다. 입원하자마자 간호사인지 누구인지 출산 후 병실을 어디로 할 거냐고 물어본다. 1인실은 남편이 함께 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못 온단다. 코로나 때문에 이렇게나 불편하다니.. 나머지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인실을 선택했다. 나중에 이 선택을 진짜 땅을 치고 후회를 했다. 어쨌든 입원 후 수술까지는 아직 4~5시간이 남았었다. 피곤한데 잠은 안 오고 이 와중에도 진통은 지속적으로 오고, 핸드폰 배터리도 없었는데 남편이 준 휴대용 배터리를 연결해서 겨우겨우 성시경 노래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수술시간! 나는 또 눕혀져서 수술실로 가고 추운 수술실로 옮겨졌다. 세 번째지만 수술실은 너무 적응이 안 된다.
하반신 마취 후 아기가 나오면 자는 걸로 하고 허리를 구부려서 주사를 맞는데 왜 이렇게 아픈지,, 세 번째 중에 제일 아팠던 것 같다. 마취가 되고 교수님이 오셔서 인사하고 가슴 쪽에 커튼을 쳐서 아래가 안 보이게 한 후, 수술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둘째 때처럼 배가 흔들리거나, 배를 누르거나 하지는 않았다. 드디어 아기가 나온 것 같았다! 그리고는... 응애응애.... 첫울음을 터뜨렸다. 얼마나 감동이던지... 너무 일찍 나와서 자가호흡이 가능할까 싶었는데 다행히 우리 막둥이는 첫 호흡을 하며 울기 시작했다. 눈물 흘리며 누워있는 내 얼굴 옆으로 아기의 얼굴을 보여준다. 2.3kg 너무 작고 소중하다. 더 못 품어 준 것에 대한 미안함과 스스로 울음을 터뜨린 것에 대한 감사함으로 눈물이 계속 흘렀고, 어느샌가 나에게 마취주사가 놓여 잠이 들었다.
혀를 저렇게 하는 건 지금도 그렇다. 정말 짜증이 날 때면 혀를 저렇게 한다. 태어날 때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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